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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서양 복식사

18세기 복식3(로코코 스타일)

18세기 후기 복식(군인)

18세기 남자 복식

웨이스트 코트

18세기 전기의 웨이스트 코트(waist coat)는 코트와 마찬가지로 허리가 꼭 맞고 도련이 약간 플레어 지며 뻣뻣하게 심을 넣었다. 옷 길이는 무릎 위 넓적다리 길이로 코트보다 짧았다.
1740년대 이후 코트와 마찬가지로 앞 중심선이 사선으로 되어 앞이 벌어지기 시작하였고, 뒤판이 앞판보다 5~8센티미터 짧아졌다. 목둘레는 둥근 목둘레로 칼라가 없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고, 후기에 스탠딩 칼라나 숄칼라가 달린 것이 있었다. 단추가 아랫단까지 촘촘히 달리고, 단추의 크기는 코트 단추보다 작은 것으로 달았다. 앞 중심과 도련에 섬세하게 도안된 문양을 금, 은 색실로 수를 놓았으므로 코트를 벌려서 입을 겨우 앞이 많이 드러나면서 웨이스트 코트가 장식적인 역할을 하였다. 포켓은 코트의 포켓과 모양이 비슷하거나 코트 포켓보다 크기가 작았다.
전기에는 소매가 달려 있었으나 1760년대 이후 소매가 없어졌다. 소매가 있는 웨이스트 코트는 겉에 코트를 입지 않고 실내에서 라운지 재킷과 같은 용도로 입었다.
1780년 이후 더블여미의 웨이스트 코트가 유행하였는데, 왼쪽이 오른쪽에 겹쳐지게 입었고 라펠이 점점 커지면서 겉으로 나오게 하여 코트의 라펠과 겹쳐지게 입기도 하였다.
1780년대 이후 웨이스트 코트의 길이가 허리선 바로 아래까지 짧아지고 앞 중심 끝이 각이 지게 벌어진 것이 나와 현대의 조끼 형태와 같이 되었다. 궁정복에는 흰색이 많이 쓰이고 수를 놓았으며, 옷감은 브로케이드, 다마스크, 실크 등이 쓰였다. 말을 탈 때 입는 것이나 실용적인 평상복에는 서지, 기타 모직물, 가죽 등이 이용되었다. 결혼 의상의 웨이스트 코트는 흰색으로 하였으며, 18세기 말에 줄무늬 옷감이 유행하였다.

스톡

셔츠

셔츠의 형태는 스탠딩 칼라에 통이 넓은 비숍 슬리브가 달리고 소맷부리에는 레이스 커프스나 주름 장식이 있다. 어깨 요크가 있는 것은 몸판에 주름이 잡혀 있고 앞 중심에 트임이 있는데, 단까지 트이지 않고 목에서 가슴선까지 트임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옷감은 흰색의 머슬린이나 리넨이 쓰였다. 목에는 17세기부터 매어온 크라바트나 슈타인커크를 1740년대까지 매었다. 레이스로 주름을 잡아 앞 중심에 늘어뜨리는 자보(jabot)는 18세기 남자 복식에서 로코코 스타일의 특징을 나타내는 품목이다.
1740년 이후는 인포멀한 복장에 크라바트와 약간 다른 모양의 넥클로스(neckcloth)를 매었다.
스톡(stock)이라는 목수건은 리넨이나 고급 면직물의 긴 천을 약간 넓은 밴드 칼라 모양의 폭으로 접어 목에 여러 번 두르고 뒤에서 매어 주거나 핀으로 고정시켜 앞 중심의 셔츠의 러플이 가리지 않게 하였다. 스톡 위에 검은색 리본을 덧 매어서 앞에서 끝을 늘어뜨렸는데, 이것은 백 위그나 피그테일 위그와 어울리게 매었다. 검은색 실크 목수건은 군인들이, 흰색은 시민들이 주로 매었으며, 영국의 멋쟁이들은 검은색을 매기도 하였다.

1770년대 바지
상퀼로트

바지

18세기 남자 바지(breeches)는 무릎 바로 아래 길이이고 다리통이 꼭 끼는 것이 특징이다. 후기로 갈수록 더욱 통이 좁아지고 말기에는 발목까지 내려가는 긴 바지가 유행하였다.
프랑스 상류 계층에서 입은 몸에 밀착되는 바지를 퀼로트(culotte)라고 하며, 검은색 벨벳이나 흰색 새틴, 모직물, 가죽 등으로 만들었다.
바지길이는 무릎 바로 아래 길이이고 바짓부리의 밴드를 버클로 여미거나 리본으로 매어 입었는데 멋쟁이들이 리본을 매어 입었다. 무릎 밴드의 버클을 구두의 장식적인 버클과 같은 종류로 조화시키는 경우가 있었는데, 크기는 구두보다 작은 것을 사용하였다. 바짓부리의 트임에는 3~5개의 작은 단추가 달린 것이 있었다.
1750년경까지는 양말을 바짓부리 위로 끌어올리고 대님으로 매는 것이 유행하였으나, 후기에는 양말이 바지 속으로 들어가고 버클로 고정시켜 입었다. 무릎길이의 바지에는 종아리의 윤곽이 드러나게 잘 맞는 양말이 필수적이었으므로 편직의 양말을 짜내는 것이 중요한 산업 중의 하나였다. 귀족들은 흰색의 실크 양말을 즐겨 신었고 흰색 바탕에 파란색 세로 줄무늬가 있는 것, 안쪽과 바깥쪽 발목에 비단실로 수를 놓는 것 등이 있었다.
바지의 구성 방법은 허리벨트가 있고, 바지의 허리 부분에 약간의 주름을 잡아 벨트에 꿰맸으며, 앞여밈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18세기 전기에는 앞 중심에 덧단(fly)이 없이 3개 정도의 단추로 여미게 된 것이 있었고, 중기 이후는 단추를 이용하여 앞판이 넓게 열고 닫는 형태가 있었다.
1780년대에는 가죽바지가 유행하였는데 흰색이 인기가 있었다. 현재 영국의 제임스궁의 경비병들이 18세기 스타일의 흰색 가죽바지를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780년대에 승마용 바지가 종아리 길이로 길어져서 부츠 안으로 넣어 입은 것이 바지가 판탈룬즈(pantaloons)로 길어지는 전조가 되었으므로, 프랑스 혁명기부터 바지를 널리 입게 되면서 무릎길이의 바지는 궁정복에 남아 있게 되었다.
긴바지 판탈룬즈는 프랑스 혁명기에 퀼로트를 입은 귀족 계급에 대항하는 혁명가들이 유니폼으로 입었으므로 이들을 '퀼로트를 입지 않은 자'란 뜻으로 상퀼로트(sans-culotte)라고 하였다.
상퀼로트의 복장은 판탈룬즈와 위에는 짧은 상의인 카르마뇰(carmagnole)을 입고 자유 모자로 불리는 프리지안 보닛을 썼는데, 이러한 복장이 학정에 반항하는 혁명가의 정치적 신념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었다는 점에서 복식이 갖는 상징적인 기능이 적용되는 한 가지 사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