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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서양 복식사

로마의 복식2

의복의 종류

토가
로마의 복식 1 참고

 

 

토가와 튜니카(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튜니카
튜닉을 로마에서는 라틴어로 표기로 튜니카로 하였다. 로마 초기의 튜니카는 두장의 네모만 천을 맞대어 목이 나올 곳만 남기고 어깨 솔기와 옆 솔기를 꿰매었다. 소매를 따로 달지 않고 입으면 프렌치 슬리브의 모양이 났으며 전체 옷 길이가 짧았다. 옷감은 모직물로 대게 흰색이었고, 후기에는 옷 길이가 길어지고 소매가 달려 T자형이 되었고 마직물이나 면직물로 만들었다. 상중일 때를 제외하고는 허리에 띠를 매어 입었다.
튜니카에는 클라비를 장식하였는데, 공화국 시대에는 클라비가 계급이나 지위의 상징이었으나 로마 제국 초기부터는 이와 같은 기능을 잃었고 누구나 클라비를 장식할 수 있게 되었다.

클라비는 튜니카의 어깨에서 아랫단까지 색 있는 수직선의 장식선을 말하는데, 선의 폭이 좁은 것은 1센티미터에서 7~10센티미터 너비의 넓은 것이 있으며, 클라비의 너비가 넓은 것은 가장 높은 계급의 상징으로 원로의 의원이나 정부 고관들이 입을 수 있었다.

A.D. 4세기경에 클라비는 한 가지 색의 천이 아니고 사자, 토끼, 양 등 동물 모양이 모티브로 짜인 것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로마 제국 시대 튜니카는 소매가 있고 옷 길이가 길어졌으며, 클라비는 단순한 장식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A.D.3세기경부터 일어났고 A.D.4세기경에는 튜니카의 어깨나 옆 도련에 장식적인 모티브로서 세그멘테가 이었다. 이 네모꼴이나 원 모양의 단독 무늬 안에는 다시 작은 무늬로 가득 채워졌다. 이 단독 무늬는 반원형의 맨틀이나 클라미스에도 있었다.

튜나카는 토가와 마찬가지로 모양과 용도에 따라 이름이 달라졌다.

 

-튜니카 팔마타
적자색 바탕천에 금사로 수를 놓았는데 종려 잎사귀 모양의 무늬가 있으며 금색 단이 있는 화려한 튜니카로, 황제나 개선장군이 토카 픽타와 함께 입은 것이다. 옷 길이는 발목 길이이고 넓은 클라비가 있으며 소매가 달렸다. 이 옷은 후에 동로마 비잔틴 궁정복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튜니카 인테리어
맨몸 위에 입는 속옷의 일종인 언더 튜닉이나 슈미즈와 같은 옷으로 이 옷 위에 스톨라를 입었다. 품이 넓지 않고 몸에 잘 맞을 정도이고, 보통 소매가 없거나 반소매가 달려 있고 발끝 길이이다. 이 옷은 여성들이 실내복으로 입었고, 초기에는 모직을 사용하였고 후기에는 비단이나 면직물로 만들었다.
4세기 이후에는 품이 넓어졌고, 유방 아래에 한 번 띠를 매어 입거나 히프에 한 번 더 띠를 매어 입었다.
어깨에 단추나 걸쇠 장식이 있는 것도 있었다.

-튜니카 마니카타
로마 제정 후기에 일반적으로 입었던 긴 소매가 달린 것으로, 처음에는 성직자들이 주로 입었고 배우들이 입었던 의복이다.

-튜니카 탈라리스
옷 길이가 발끝 길이이고 넓고 긴 소매가 달린 튜닉이다. 축제 의상으로 아랫단에 뇌문 장식이 있고 동물 모양의 무늬를 금실로 수놓은 것이 있다. 남자의 결혼 의상으로 입었다는 설이 있으며, 4세기 이후에 널리 입었다. 그 이전에는 로마 시민들이 짧은 튜닉을 입었고 긴 튜닉인 이 옷은 잘 입지 않았다고 한다.

-튜니카 라티클라비아
흰색의 모직으로 된 튜닉으로 목에서 아랫단까지 앞뒤에 보라색 클라비로 장식하였다. 집정관이나 원로원이 입었으며, 클라비 너비의 크기가 착용자의 지위를 나타냈다.

 

 

 

달마티카(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달마티카
복식 사상 새로운 의복이 나타났는데, 이 달마티카는 A.D.190년경 달마티아 지방에서 유래된 것으로 처음에는 기독교인들이 입었고 A.D.3세기경에는 일반적으로 널리 입었던 옷이다.
달마티카만 입는 것이 기본이었으나 A.D.3세기 중기부터는 긴 소매가 달린 튜닉을 속에 껴입었으며, 띠를 매지 않고 입어서 품이 넓은 겉옷의 구식을 하였다.

달마티카는 십자 모양의 천을 반 접어 배래와 옆선을 꿰매고 머리가 나올 곳을 터놓은 것으로 진동에 솔기가 없다. 클라비가 앞자락과 소맷부리에 두 줄 있고, 소맷부리와 단에 술을 단 것도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입은 달라티카는 모직, 마직, 면직 등의 표백하지 않은 자연색 그대로 소박한 것이었으나 차츰 옷 전체에 무늬가 있는 화려한 옷으로 변하여 A.D.5세기부터는 더욱 화려해졌다.

옷의 형태도 변하여 4세기 이후는 배래와 옆선을 직사각형이 아닌 사선으로 재단하여 가슴둘레와 진동 둘레가 좁아졌는데, 이와 같이 옷이 몸에 잘 맞는 재단을 시도하였다는 것은 복식 사상 재단법의 발전을 암시하는 것으로 그 가치를 크게 인정하는 학자도 있다.

달마티카는 오늘날 천주교회의 법의로 남아서 이름과 함께 전해 내려오고 있다.

 

튜니카,스톨라,팔라(패션전문자료사전)

스톨라
스톨라는 그리스의 키톤과 같은 의복으로 로마에서는 여자들이 이오닉 키톤과 도릭 키톤을 그대로 입거나 두 가지가 합쳐진 형태와 같은 것을 입었다. 즉, 도릭 키톤의 아포티그마가 있으면서 이오닉 키톤처럼 소매를 단추로 잠그는 모야의 스톨라를 입은 것을 볼 수 있다. 후기로 갈수록 길이가 길어지고 폭이 넓어져서 아래 도련에 주름이 많아졌다.

옷 길이는 발끝 길이로 길로, 소매는 도리 키톤처럼 소매가 없는 것, 팔꿈치 길이인 것, 긴소매 등이 있었다. 소매는 넓은 것, 좁은 것 등 다양한 것이 있었고, 유방 아래에 띠를 둘러 입거나 히프에 한 번 더 띠를 둘러 입기도 하였다. 초기에는 흰색의 모직물을 사용하였으며 후기에는 마직물, 면직물, 비단을 사용하였다.

외의
외래적인 복식의 수용과정에서 로마에는 없었던 바지나 판초형의 외투를 처음에는 천시하여 상류층에서는 입지 않았으며 군인이나 천민층에서 입기 시작하였다. 제정 시대에는 초기의 거친 모직물로 만들었던 외의를 후기에는 섬세하게 짠 고급 직물로 만들어서 모든 계층에서 입게 되었다.

 

 

팔라(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팔라리움(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팔라, 팔라리움
팔라와 팔라리움은 로마인이 외출할 때 입는 외의의 일종으로 그리스의 히마티온에서 유래된 의복이다.
착용자의 어깨에서 발끝 길이의 폭에 길이는 폭의 3배 정도 되는 직사각형의 긴 천을 히마티온과 같은 방법으로 튜니카나 스톨라 위에 둘러 입었다.

여자들은 팔라를 머리까지 둘러 입기도 하여 베일을 겸하였는데, 머리에 감아 쓰는 것을 팔리올룸 이라고 하였다. 로마의 여자들은 오늘날처럼 교회에서 머리에 베일을 쓰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

팔리움은 모든 계층에서 입었으나 그 당시 학자나 철학자들은 신분의 표지를 이 옷을 입었는데, 넓게 펴서 목에 두르지 않고 세로로 반 접어 걸쳐 입기도 하였다. 팔리움은 후에 천주교 전례복으로 전승되었다.

팔라의 옷감은 모직물, 마직물, 비단을 사용하였으며, 옷감 전체에 무늬가 있는 것이나 밝은 색이었고 스톨라의 색과 조화가 되도록 입었다.

 

 

팔루다멘툼(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팔루다멘툼
그리스의 클라미스를 로마에서 받아들여 발전시킨 의복으로, 직사각형의 천을 어깨에 두르고 오른쪽 어깨에서 피불라로 고정시켜 입었다.
공화정 초기에 장군들이 입었고, 로마 제국 시대에는 황제나 장군들이 튜니카 위에 입었다.
이 팔루다멘툼은 5세기 이후 비잔틴 황제의 공복이 되면서 자색 비단에 타블리온 장식이나 수를 놓는 등 화려한 옷으로 변형되었다.

-라세르나, 라에나
라세르나는 골족이 입기 시작한 것으로 로마 제정 시대(B.C.1세기)부터 로마 남자들이 널리 입었다.
초기에는 군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입었으며 후기에는 모든 계층에 보급되어 귀족들도 착용하였다.

폭이 넓은 직사각형이나 반원형의 천을 어깨에 걸치고 피불라로 고정시켜 입었고, 후드가 달린 것도 있었다. 또한 후드에 어깨를 덮는 작은 케이프가 달린 것을 쿠쿨루스라고 하며 이 쿠쿨루스는 중세에 샤프롱으로 이어졌다. 재료는 두꺼운 모직물이나 얇게 짠 가벼운 모직물을 사용하였고, 초기에는 갈색이나 검은색이었고 후기에는 흰색, 자주색 등이 있었다.

라에나는 남자들이 보온을 목적으로 입었던 반원형의 외투이다. 반원형의 두꺼운 모직물 천을 어깨에 두르고 오른쪽 어깨에서 피불라로 고정시켜 입었다.

-파에눌라
토가 다음으로 로마의 모든 계층에서 많이 입었던 판초형의 외투로 여행할 때나 비가 올 때 입었다. 형태는 큰 원형 천의 가운데 머리가 들어갈 부분이 째어져 있거나 앞 중심이 도련까지 터진 것이 있다. 끝이 뾰족한 후드가 달렸으며 모직물이나 가죽으로 만들었고, 회색, 갈색, 자주, 검정 등이 있었다.

파에눌라는 후기에 이름이 카술라로 바뀌었고 다시 오늘날의 천주교 전례복인 샤쥐블에 그 자취가 남아 있다. 카술라는 라틴어로 작은 집이란 뜻이며, 비바람 속에서는 작은 텐트와 같은 역할은 한 데서 붙은 이름이다.

 

 

사굼(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사굼
사굼은 그 기원이 골족의 남자 의사에 있는 것으로, 로마의 군인들이 입은 군복의 일종이다. 장군은 자색 사굼을 입었다. 형태는 클라미스와 같은 것으로 직사각형의 두꺼운 모직천을 두르고 오른쪽 어깨에서 피불라로 고정시켜 입었는데, 이 의복은 외투, 담요, 텐트와 같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였다. A.D.2세기 이후에는 입지 않게 되었다.

 

 

로리카(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로리카
로리카는 가슴받이를 뜻하는 것으로, 로마 군인들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입은 갑옷이다. 몸에 잘 맞게 앞, 뒤판 두 장을 청동으로 판을 떠서 만들었고, 왼쪽 겨드랑이 및 옆선에 여미는 장치가 있으며, 양어깨에 앞, 뒤판을 연결하는 가죽띠가 달려 있다.

로마 군인들은 속에 로인클로스를 입고 겉에 튜니카, 가죽옷, 로리카 등을 순서대로 입었으며, 외투로 아볼라난 팔루다멘툼을 두르고, 장교는 붉은색 말총이 달린 투구를 썼다.

속옷
로마에서는 영토가 북쪽으로 넓어지면서 추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가지 종류의 외투와 함께 속옷이 생겨났다. 여러 벌의 옷을 한 번에 껴입는 풍습이 생겨난 것은 추위를 막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정복지로부터 약탈품과 노예가 유입되면서 전체적으로 풍요해지고 생활양식이 사치스러워진 것에도 원이 이 있을 것이다.

공화정 시대에 남자 들은 튜니카와 토가 안에 요의를 입었는데, 제국 시대에는 이 요의에 장식적인 자수를 놓아 노예, 연극배우, 무용가, 검투사 등 여러 계층에서 입었다.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요의인 리시니움은 로마인의 운동복이었다. 리넨으로 된 긴 천을 양다리 사이를 지나게 입고 그 끝을 한데 묶는 형태로, 춥지 않은 날에는 이 옷만 입고 운동 경기를 하였다. 튜니카 속에 겉의 것보다 품이 좁고 옷 길이가 짧은 언더 튜닉인 수부쿨라를 입었다.

여자들은 스툴라 속에 몸에 꼭 맞고 둥근 목둘레에 팔꿈치 길이의 소매가 달린 튜니카 인테리어를 입었다.
이 위에 넓은 띠를 매어 입기도 하였다. 로마 여자들의 다른 속옷으로는 아래에 요의를 입고 위에는 긴 마직으로 된 띠로 유방을 감아매는 스토로피움을 입었다. 이 한 벌의 속옷은 공중 목욕 때 입거나 운동할 때 입었던 것으로, 스트로피움은 젖가슴에 띠를 매어 입는 간단한 형태의 것으로 브래지어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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