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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서양 복식사

로마의 복식3

로마의 여자 헤어스차일과 장식(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로마인의 헤어스타일

B.C.3세기경부터는 머리를 짧게 깎고 곱슬거리게 손질을 잘하였다. 제정 시기에는 다시 연장자성직자들이 머리와 수염을 길게 하였다.

 

공화정 초기 여자들의 머리 모양은 그리스의 헤어스타일에 기초를 두었다. 앞가르마를 타뇽 형태로 단순한 머리 모양을 하였으나, 후기 제정 시기에는 복잡하고 정교한 형태가 되었다. 앞머리는 작은 컬로 뒤덮이고 위로 높이 솟게 하며, 뒷머리는 땋아서 둥글게 말아 올린 모양(A.D.2세기까지 유행)과 머리카락을 모두 뒤로 빗어 넘기는 형을 볼 수 있다. 여성들은 금발을 좋아하여 황금색으로 물들이거나 탈색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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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의 머리 장식과 모자

머리 장식

남자들전쟁에서의 승리자나 경기에서 이긴 자에게는 긴 리본과 월계수 가지와 잎사귀로 장식한 월계관을 씌워 주었다. 결혼식이나 축제 때에는 화관을 썼으며, 황제는 보석으로 장식된 관을 썼다.

여자들은 머리에 리본, 화환, 장식 망, 진주, 보석 등으로 장식을 하였고, 보석 장식의 스테판을 쓰기도 하였다.

 

모자

그리스의 페타소스와 같이 챙이 있는 모자를 여행할 때 주로 썼고, 필로스라는 원뿔형의 머리에 꼭 맞는 펠트직의 모자는 평민이나 노예들이 썼다. 그밖에 팔라, 팔리움을 머리 위에 둘러쓰기도 하고 라에나, 라세르나에 달린 후드가 방한과 비바람을 막는 목적으로 쓰였다.

 

신발

칼케우스(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부츠(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로마의 신발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의 것과 기본 형태는 비슷하나 종류가 많아지고 더 정교해졌다.

엮는 끈의 모양이 복잡해지고 신분이나 직업에 따라 모양이 달라졌다. 구두창이 생기면서 좌우의 구별이 생겼다. 제정 시기에는 신발의 형태와 재료에 따라 신분이나 직업을 나타냈으므로 귀족들은 신발에 많은 비용을 썼으며 노예는 맨발이었다.

 

신발들은 초기에는 제화점에서 소규모로 만들었으나, 제정 시기에는 군대에 공급하기 위해 공장에서 대규모로 만들어 냈다. 로마인들은 가죽을 무두질하는 것이나 제화기술이 뛰어났고, 그 당시 제화공은 명예로운 직업으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로마의 신발의 형태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누면 샌들, 반 구두, 샌들과 반 구두의 혼합형, 부츠로 나눌 수 있다.

 

그리스인들이 샌들을 많이 신은 데 비해 로마인들은 발복까지 덮는 반구두인 칼케우스가 인기가 있었다. 칼케우스는 두 개의 끈으로 발목 부위를 여러 번 감아 앞쪽에서 매었다. 질이 좋은 가죽으로 만들고 착색한 칼케우스는 부유층에서 신었고, 신발에 보석 장식을 한 칼케우스 파트키리우스는 네로 황제가 신었다는 기록이 있다.

 

크레피다는 구두창의 양옆을 두 개의 끈으로 꿰어 발잔등에서 크로스 시켜 발목을 돌아 앞에서 매는 형태이다. 캄파구스라고도 하는 부츠 형태의 코투르누스는 귀족들이 신었으며, 원로원의 의원은 무릎까지 닿는 장식적인 부츠를 신었다. 개선장군의 위용을 나타내기 위해 부츠 맨 윗부분에 사자머리 모양의 장식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일반 시민들은 부드러운 가죽신인 소쿠스나 크레피다를 집 안팎에서 신었다. 군인들은 구두 징이 박힌 신을 신었다. 여자들의 샌들이나 칼케우스는 남자 것보다 색이 화려하였고, 신부의 신은 금색이나 노란색이었다.

 

신발의 재료는 가죽, 모직물, 비단, 나무껍질, 풀을 이용하였고, 은 흰색, 파랑, 녹색 등이 쓰였다.

 

액세서리와 문양

피불라(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반지(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피불라(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액세서리

로마인들은 정복지로부터 가져오거나 수입해 온 진기한 보석들을 장식품에 많이 이용하였다. 후기 로마 사회의 사치 풍토와 부의 과시 수단으로 장신구가 거의 필수적이 되었는데, 장신구의 디자인은 그리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장신구에는 목걸이, 귀고리, 팔찌, 피불라, 반지, 허리띠 등이 있었다.

 

목걸이의 재료는 금,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오팔, 진주 등을 사용하였고, 금으로 만든 것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새들이 연결되어 있고 고리의 끝부분은 두 마리의 돌고래와 조가비 모양으로 된 매우 세련된 형태를 갖춘 목걸이도 있다.

 

팔찌는 금이나 은을 세공하여 만들거나 철, 구리, 상아 등을 이용하였다.

 

로마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장식과 실용적인 목적의 중요한 장신구인 피불라는 그 형태와 재질이 매우 다양하다.  오늘날의 안전핀과 유사한 것, 은이나 구리 조각이 되어 있는 T자형의 것, 길이가 길고 무거운 것, 뾰족한 핀으로 된 것  등이 있다. 길이가 길고 무거운 피불라는 우발적인 싸움에서 뾰족한 핀으로 된 것과 함께 흉기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반지는 실용적인 것과 장식적인 것, 살인용이 있었다. 처음에는 철로 만들었다가 후에 금반지를 사용하였는데 그 종류가 많아서 문장 반지, 열쇠 반지, 여름 반지, 겨울 반지, 독 반지 등이 있었다. 여름 반지는 형태가 작고 겨울 반지는 크고 무거워서 엄지손가락에 끼었다. 열쇠 반지는 문을 잠그고 열기 위해 여자들이 많이 끼었고, 독 반지는 작은 물약 병과 장식적인 뚜껑이 달린 형태로 독물을 상대방 몰래 술잔에 넣을 수 있게 뚜껑이 편리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결혼반지는 신랑 신부의 두상이 새겨져 있다.

 

그밖에 고대로부터 사용해 온 지팡이가 있었고, 비 올 때 쓰는 가죽 우산과 종려 잎으로 만든 파라솔이 있었다.

 

문양 

로마에서는 인동덩굴, 아칸서스, 월계수 등을 그리스 문양이 계속 사용되었으나 그리스의 것보다 좀 더 복잡하고 화려했다. 이는 그리스의 예술가들이 로마에 이주하여 로마인들을 가르치거나 고용되었고, 후기 로마인들의 사치를 즐기는 취향에 맞추기 위하여 그리스의 단순한 문양 형태가 좀 더 정교해지고 과장되었을 것이다.

튜니카나 토가의 장식, 장신구 등에 연속무늬로 하거나 세그멘테에 채색이나 자수를 하여 문양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장미, 소용돌이무늬, 동물 문양도 이용되었다.

 

로마의 직물 

영토의 확장으로 모직물, 마직물, 면직물의 산지가 늘어나고, 수입품까지 합쳐 로마의 전성기에는 직물 또한 풍부하였다. 섬세한 리넨과 모직(라사)이 상류 계층에서 이용되었고, B.C.2세기(126년) 경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의 면직물, 중국의 비단이 수입되었다. 직물 가공 방법이 개발되기 시작하여 원시적이기는 하나 천에 내구성을 주기 위해 물속에 천을 넣어 손, 발, 방망이 등으로 다져서 수축시키거나 백토를 천에 발라 발로 밟거나, 화산구의 유황을 모아다가 그 증기로 직물 표백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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