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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서양 복식사

북유럽 민족 복식

역사적 배경

게르만족은 로마인들이 지중해 연안에 통일 제국을 건설하고 있을 때 발틱해를 중심으로 한 스칸디나비아 남부와 유틀란드 반도 등지에서 수렵과 유목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원시적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A.D. 2세기부터 인구 증가로 인한 경작지의 부족은 게르만족 이동의 동기가 되어 라인강과 도나우강 일대로 이동하게 되었다. A.D.4세기 중앙아시아의 훈족의 압력을 받아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어 476년에는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모든 지역에 부족 국가들을 세우게 되었다.

 

A.D. 4세기경 게르만족의 분포 상태는 북방 라인 강변에는 프랑크족, 남방에는 알라만족, 루마니아 지방에는 반달족, 다뉴브 강변에는 서고트족, 흑해 북방에는 동고트족, 베젤 강변에는 색슨족, 슐레스비히 지방에는 앵글족, 시레지아 지방에는 롬바르드족이 정착하였고 있었다. 이들은 집단으로 이동하여 롬바르드족은 이탈리아 복부에 왕국을 건설하였고,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은 남쪽으로 이동하여 도버해협을 건너가 원주민 켈트족과 스코트족을 정복하여 7 왕국을 세웠다.

 

동고트족이탈리아에 침입하여 나라를 세웠으며, 서고트족은 이탈리아를 지나 갈리아 지방으로 이동하여 후에 스페인 왕국은 건설하였다.

 

반달족은 서고트족에 앞서 스페인에 침입하였으나 북부 아프리카로 쫓겨나서 북아프리카에 왕국을 건설하고 지중해를 무대로 약탈과 파괴를 일삼았으므로 반달리즘이라는 용어의 기원이 되었다.

 

프랑크족갈리아 지방으로 이동하여 메로빙거 왕조와 카롤링거 왕조로 구분되는 프랑크 왕국을 세워 유럽의 안정 세력을 형성하였다.

 

북유럽 민족 복식의 일반적 특징

유럽 여러 지역에서 정복 활동을 벌인 게르만족들은 주로 목축업 농경 사회를 이루었으므로 짐승의 모피를 의복 재료로 사용하였고, 추운 기후 조건이므로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 개방적인 형태와는 대조적으로 신체를 감싸는 몸에 잘 맞는 의복을 입었다.

이들 북방 민족의 의복은 사냥과 농사에 편리한 기능성과 활동성을 살리거나 추위를 막기 위한 기능을 살리는 데만 주력한 것은 아니고, 옷의 단에 술 장식을 달거나 단을 톱니 모양으로 자르고 목둘레에 장식선을 두르는 둥 복식 디자인상의 기교를 구사하였고, 청동으로 만든 장신구를 많이 사용하였다.

 

이들 북방 민족의 원시적인 생활양식이 로마 문화와 접촉함으로써 문화의 융합에 의해 상호 간의 복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A.D. 4세기경부터 직조 기술염색술의 발달로 가죽, 모피, 거칠게 짠 모직물을 주로 사용하던 청동기 시대 이래로 점차 체크무늬, 줄무늬, 바둑판무늬를 넣어 짜낸 직물을 사용하게 되었다.

 

북유럽 여러 민족의 기본 복식은 튜닉, 바지, 맨틀 형식의 외투이고, 농민들은 소매 없는 튜닉 형태인 콜로비움을 덧입었다. 골족양모를 펠트 시키는 방법을 이용하여 모자와 갑옷을 만들었다. 이 갑옷은 두꺼운 펠트 직물로 가슴과 등을 막는 단순한 형태의 것이다. 군복으로 쇠사슬 갑옷허리 벨트를 한 것도 있었으며, 가죽 캡이 발달하여 콘 형, 돔 형, 미트라 형으로 된 금속 헬멧을 만들어 내게 되었고, 이 헬멧들은 금속만으로 된 것과 가죽에 금속을 씌운 것이 있었다.

 

프랑크족메로빙거 왕조 시대에 의복 재료로 모직물은 바지 만드는, 리넨은 주로 부유층에서 튜닉이나 속옷을 만드는 데 이용하였다.

 

북방 민족들은 옷을 여미는 데 피불라 외에 뼈, 가죽, 에나멜로 만든 단추를 사용하였으며, 재단과 봉제 기술이 발달하여 입체적인 재단법으로 재킷이나 바지를 만들어 입음으로써 그리스나 로마의 드레이퍼리 형식의 옷에서 몸에 맞게 팔다리와 몸통을 감쌀 수 있는 옷으로 입체 구성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였으므로, 이 북방 민족들에 의해 서양 복식이 평면 구성에서 입체 구성으로의 새로운 전환점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북유럽 민족 의복의 종류

요의

고대복의 기본이었던 요의 북방 민족들이 청동기 시대부터 입었던 옷으로 재료는 동물의 가죽이고, 입는 방법은 가죽을 양다리 사이로 기저귀처럼 하고 허리를 가죽띠로 묶어 입었다. 길이의 남은 부분이 앞뒤로  늘어지게 하였다. 요의의 또 다른 형태는 정사각형의 천의 대각선을 접어 삼각형을 만들어 입었는데, 이러한 형태의 옷은 남녀의 속옷이었다.

 

튜닉

튜닉남녀가 다 입었고, 옷 길이무릎 길이나 아래 도련올을 풀어 만든 술이 있거나 톱니 모양으로 된 것이 있었다. 남자짧은 튜닉을 입고 아래에 바지를 입은 것이 일반적인 차림이었고, 여자발목 길이의 긴 튜닉을 입고 띠를 매지 않거나 유방 바로 밑에 띠를 매어 주름이 생기게 입었다.

 

추울 때튜닉을 여러 벌 끼어 입기도 하였는데, 북유럽 민족의 복식에서 특이한 사실은 여성들이 속옷을 입는 관습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속옷이 거의 발달하지 않았고 요의를 속옷으로 입었을 뿐이었다. 속옷인 언더 튜닉흰색 얇은 마직물로 만들었고, 옷 길이가 허리까지 오는 것은 셔츠와 같은 성격을 띤다.

 

튜닉은 주로 모직물로 만들었으며 흰색이나 빨강, 초록, 자색으로 염색한 것이 있었고, 장식이 있는 것, 줄무늬, 체크무늬의 것이 있었다.

 

바지

바지는 다리에 밀착되는 형태와 품이 약간 넓은 형태가 있었다. 바지 길이는 대게 발목 길이이고 부리으로 오므릴 수 있도록 되어있다(발목 쪽의 끈이 있다). 허리는 벨트가 붙어 있지 않고 가죽끈이나 실을 꼬아 만든 으로 조여서 매어 입었다. 바지를 입은 후 장딴지에는 가죽이나 천으로 된 밴드를 감아서 다리를 보호하였다. 

 

품이 약간 넓은 페이즌이라는 바지는 가죽끈을 가지고 X자형으로 허벅지까지 묶어서 바지를 다리에 밀착시켜 입었다. 바지의 재료는 가죽, 마직물, 모직물 등이 있었다.

 

블라우스

고대복은 대개 남녀의 의복이 원피스형인데, 북방 민족의 의복은 남자의 기본 의복짧은 튜닉바지로 나누어지고, 여자블라우스스커트로 된 투피스형이 있다. 이러한 것은 사지를 동시에 감쌀 수 있는 원피스형으로 의복 구성하기에는 재단과 봉제가 매우 어려우므로 상하로 분리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블라우스의 형태는 소매가 팔꿈치 길이이고 둥근 목둘레에 장식선이 둘러져 있고 앞 중심이 째어져 있다. 재킷패턴이 현대복과 유사하며, 목둘레소맷부리블랭킷 스티치로 처리되어 있어서 울이 풀리지 않도록 되어 있고, 아랫 도련에는 넓적한 밴드를 대어 끝처리를 하였다.

 

스커트

여자들발목 길이의 통이 넓은 스커트를 입었다. 스커트의 구성 방법은 스커트 허리 부분에 주름을 잡고 벨트두 번 감아 매어 주름을 고정시켜 입었다. 스커트를 블라우스 위에 입어서언더블라우스를 입은 모양이 되는 것이 있었다.

 

외투

북유럽 민족의 외투추위를 막기 위해 생겨난 것으로, 재료는 털가죽, 펠트직, 체크무늬의 모직물을 이용하였다. 사각형의 담요와 같은 것을 어깨에 두르고 한쪽 어깨나 앞 중심에서 여미는 사굼을 많이 입었고, 사각형의 천을 대각선으로 반 접어 삼각형 모양으로 된 것을 숄을 두르듯이 어깨에 걸치는 것이 있었다.

 

그밖에 케이프 모양의 외투를 청동기 시대부터 여러 세기 동안 북유럽인들이 애용하였다.

케이프의 형태모직물로 된 반원형의 직선 쪽을 겉으로 접어서 입으면 접은 부분이 숄칼라 모양이 되는데 뒷목의 중심에 장식적인 안전핀이 꽂혀 있어 칼라 모양을 고정시켜 주었다.

그리스나 로마의 외투인 라세르나, 파에눌라도 같이 이용되었다. 

 

콜로비움

콜로비움앞 중심목둘레에서 아랫단까지 터진 것이나 앞이 막힌 엉덩이 길이의 조끼 형태이다. 재료를 털가죽으로 만들어서 털이 안쪽으로 가게 입으면 목둘레와 도련 부분에 털이 밖으로 빠져나와서 마치 털로 트리밍 한 것같이 장식적인 모양이 되었다.

 

헤어스타일과 모자

여자들은 긴 머리채가 자랑거리였으므로 길게 땋아 늘어뜨리고 색이 있는 헝겊으로 장식하거나 머리망으로 묶었으며 가발도 사용하였다. 골족은 붉은 머리를 좋아하여 머리에 염색을 하기도 하였다.

 

남자는 민족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북부, 남부의 튜톤족은 머리카락을 길게 어깨까지 늘어뜨렸고, 색슨족은 머리를 짧게 깎았다. 켈트족과 튜톤족은 클로슈형의 둥근 캡을 썼다.

 

언더 튜닉과 겉 튜닉을 입고 머리채를 길게 앞가슴 쪽으로 땋아 내렸으며, 머리에는 헤드레일을 두르고 등 뒤로 베일을 늘어뜨렸다.

 

신발

신발의 형태는 종족에 따라 차이가 있다. 기본형으로는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구두창이 없는 모카신과 로마인의 슬리퍼와 같은 형태의 신과 부츠형이 있었다.

 

액세서리

튜닉을 입고 허리에 매는 벨트와 그 부속품인 버클이 있었다. 너비가 넓고 장식적인 벨트보석 박힌 금으로 만든 버클귀족 계층에서 사용하였다.

 

피불라브로치외투고정시키는 데 쓰였고, 반지, 팔찌, 목걸이 등의 장신구는 금, 은, 동으로 세공하여 만든 것이 있으며 그중 목걸이가 매우 특이하다. 목걸이는 넓적한 칼라 모양에 금과 청동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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