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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서양 복식사

비잔틴의 복식

비잔틴의 역사적 배경

비잔틴은 로마 제국이 A.D. 395년에 동, 서로마로 분리되어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하는 동로마 제국이 성립된 후 1453년에 오스만 터키에게 망할 때까지 약 1000년간 존속하였다.

 비잔틴 제국은 북쪽으로 러시아와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영향을 끼쳤는데, 5세기부터 12세기에 걸쳐 가장 번성하였다.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로에 있었으므로, 이러한 지리적인 위치가 무역업, 제조업 등을 번성하게 하였다. 동서양의 상품이 콘스탄티노플을 경유하였고, 흑해 연안에서 모피, 곡물, 포도주 등을 수입하고, 인도, 중국, 시리아, 아라비아 등지에서 비단, 향료, 보석을 수입하였다.

 

제조업에 있어서는 금속 제품, 유리 제품, 직물 등이 생산되었고, 9세기 말에는 콘스탄티노플에 길드(guild) 제도가 생겼으며 특히 직물 산업이 번성하였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6세기 비잔티움에 황실 전용 견직물 직조 공장을 세운 후 비단 직물이 다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하여 9세기에서 13세기에 직물 산업이 급속히 발전하였다. 여기서 생산되는 직물은 빨강과 자색으로 염색되었으며, 종교적인 주제와 사람, 동물무늬 등이 있었다.

 

왕실에서는 비잔틴의 비단을 주변 국가 왕실에 선물하였으므로 비잔틴의 풍물이 다른 나라에 전해졌고, 십자군 원정에 의해서도 동방의 직물과 복식이 서유럽에 전파되었다.

 

비잔틴 문화의 기반은 그리스 정교가 주축이 되었으며 그리스 문화, 로마 문화, 헬레니즘 문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나가면서 동방의 문화가 융합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다. 모자이크에 나타난 비잔틴 미술은 그리스의 현세적 아름다움과 쾌락적인 것이 동방의 신비로움과 융합된 밝은 색채와 풍부한 장식성이 종교와 결부되어 독특한 양식을 보여 준다.

 

 비잔틴 제국은 천 년간 이어지면서 일관된 문화권을 형성하여 서유럽 문화에 크게 영향을 미쳤고 동북부 유럽 지역에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비잔틴 복식의 영향은 발칸반도와 러시아에 이르는 지역에 널리 미치게 되었는데, 이는 9세기경 남부 슬라브족이 그리스 정교를 믿게 되고 불가리아, 아르메니아가 이러한 영향권 내에 들어가게 되어 비잔틴 복식의 영향이 유라시아의 북쪽까지 이르게 되었다. 현재 발칸반도의 민속 의상과 비잔틴의 왕실 의상이 유사한 것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비잔틴의 복식의 일반적 특징

비잔틴은 그 영토가 거의 그리스의 판도에 있었으므로 복식에 있어서도 그리스와 로마의 복식을 기본으로 해서 기독교의 종교적인 영향과 아시아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냈다. 인체미와 의복의 조화를 살리는 그리스의 복식과는 달리 신체를 감추고 가리는 의복으로 일관된 것은 종교적인 영향으로 볼 수 있으며, 왕실 의상에 화려한 비단 직물을 사용하고 금실로 수놓거나 복식에 보석 장식을 많이 한 점은 동양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남녀의 기본 복식은 튜닉, 달마티카, 팔루다멘툼이었고, 팔루다멘툼은 황제, 귀족들이 입었고 평민들은 팔리움, 팔라를 입었다. 튜닉의 클라비와 세그멘테가 로마 복식에 비해 더욱 정교하게 장식되었으며, 후기로 갈수록 옷감이 뻣뻣하고 화려해졌다.

  

기독교 시대의 진행에 따라 남녀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았던 고대 복식에서부터 성별에 따라 의복의 형태가 구별되기 시작하였다. 즉, 5세기부터 남자의 튜닉은 옷 길이가 짧아지면서 옆선이 사선으로 퍼지게 하거나, 양쪽 옆 솔기에 무(gasset)를 대어 플레어 지게 하였고, 여자의 튜닉은 발을 완전히 가릴 만큼 옷 길이가 길어지면서 소맷부리가 넓어지고 옷이 허리에 잘 맞게 하여 근세 여자 로브의 기본형이 형성되었다.

 

복식과 건축물에 이용된 장식품의 도안 내용에는 비잔틴 시대의 문화유산이 반영되어 있다. 기하학적인 연속무늬는 그리스와 로마의 것을, 신화적인 동물 문양은 동양의 것을, 십자가와 양은 기독교 신앙을 유산으로 하여 이러한 것들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도안화하여 의복에 수를 놓거나 무늬로 이용하였다. 가장 특색 있는 것으로는 팔루다멘툼 앞자락에 사각형 모양으로 수를 놓거나 보석 장식을 한 타블리온이다.

 

의복의 종류

비잔틴 시대의 남성복장 튜닉,망토(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비잔틴 시대의 여성복장 튜닉,망토(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튜닉

비잔틴의 튜닉은 로마의 튜니카가 색과 형태에 있어서 화려해지고 장식적이 되었다. 

 옷 길이는 무릎 위의 짧은 것에서부터 발목길이의 긴 것이 있었으며, 옷 길이가 긴 것은 황제나 상류 계급에서 입었다. 튜닉 앞뒤 몸판에 클라비 장식이 있거나 양어깨 또는 아랫단 양옆에 세크멘테 장식이 있는 것이 있으며, 아래 도련에 선을 두른 것도 있었다. 소매는 손목길이로 꼭 맞으며, 남자는 로 웨이스트에, 여자는 하이 웨이스트에 띠를 매어 입었다.

 

옷감은 모직물, 비단, 비단과 모직의 교직물 등이 사용되었고, 6~8세기에는 녹색, 빨강, 노랑, 자색 등으로 염색한 모직으로 만든 튜닉이 있었으며, 황제의 튜닉은 자색 비단에 금과 보석 장식이 된 것이 있었다. 노동 계층의 튜닉은 장식이 없는 단순한 형태로 옷 길이는 무릎길이였다. 소매는 긴 소매와 팔꿈치길이 또는 아주 소매가 없이 오른쪽 어깨가 노출된 엑소미스와 같은 튜닉을 입는 예도 있다. 로마와 마찬가지로 튜니카팔마타나 튜니카 탈라리스가 있었으며, 튜닉 위에 소매통이 넓고 소매길이가 짧은 슈퍼 튜닉을 덧 입기도 하였다.

 

달마티카(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달마티카

비잔틴의 달마티카는 초기에는 기독교인들이 입은 소박한 의복이었으나 기독교가 공인된 후부터 모든 계층에서 널리 애용되었다. 초기의 달마티카는 품과 소매통이 넓으며, 앞뒤 몸판과 소매에 클라비 장식이 있고, 소맷부리에 술이 달린 것도 있다.

 

4세기 이후 재단법이 발달하면서 가슴 부분이 몸에 맞고 아래 도련이 넓어지는 형태가 되었다. 재료는 마직물, 모직물을 사용하였고 귀족층은 비단을 쓰기도 하였다.

 

목둘레와 소매의 배래선이 특이하며, 의복 전체에 종교적인 주제의 무늬로 장식되어 있는 달마티카도 있었다.

 

팔루다멘툼

비잔틴에서는 팔루다멘툼을 황제, 황후, 사제, 귀족에 한해 공식복으로 착용하였다. 형태는 직사각형, 정사각형, 사다리형의 천을 몸에 두르고 오른쪽 어깨에서 장식핀이나 브로치로 고정시켜 입었다.

 

색과 장식에 따라 계급을 나타냈으며, 자색은 황제와 황후만이 입을 수 있었다. 유스티니우스 황제의 팔루다멘툼에 장식된 타블리온은 고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금색 바탕에 녹색의 새 모양이 네모 안에 채워져 있다. 테오도라 황후의 자색 팔루다멘툼은 녹색으로 안을 대었고 아래 도련 부분에 선물을 들고 있는 동방박사 세 사람이 수놓여져 있다. 아리안 황후의 팔루다멘툼의 가장자리와 타블리온의 윤관석에 두 줄의 진주로 장식 하였다.

 

비잔틴에서는 남자용의 팔라움, 여자용의 팔라를 여전히 튜닉이나 달마티카 위에 입었다. 

그 밖에 아볼라라고 하는 클라미스와 같은 모양의 붉은색 외투를 군인들이 입었고, 반원형의 코프는 성직자나 교인들인 비올 때 후드 달린 외투로 입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후에 일반화된 케이프이다.

 

로룸

로룸은 로마의 팔리움이 크기가 줄어들어 변한 것으로 황제, 황후, 사제가 입었다. 로룸은 폭이 좁고(약 15센티미터), 길이가 긴 비단을 겹으로 만들어 금사로 수놓거나 진주, 보석 등을 붙여 튜닉이나 달마티카 위에 입었다.

 

8세기부터 12세기 동안에 궁중 복식으로 착용된 로룸의 형태에는, 폭이 좁은 긴 띠를 몸에 감아 입는 모양과 판초형으로 머리가 들어갈 만큼 목둘레가 파여 있고 앞뒤로 패널이 늘어지는 형태가 있다.

 

입는 방법은 한쪽 끝자락을 발끝을 향해 늘어뜨리고 나머지 부분을 어깨에 걸어 등을 돌아 겨드랑이 밑을 지나 왼쪽 손에 끝자락을 걸치는 것으로 토가의 착용 방법과 비슷하다.

 

브라코

브라코는 북유럽의 골족과 그 외의 게르만족이 아시아로부터 받아들이여 입기 시작한 바지이다.

 

로마에서는 바지를 야만족의 옷이라 햐여 귀족 계층에서는 입지 않았고 평민과 노예들이 입었으나, 비잔틴에서는 널리 착용되어 왕이 브라코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복식 자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옷감은 주로 모직물을 사용하였다.

 

남자들이 튜닉을 입고 아래에 통이 약간 넓은 발목길이의 바지를 입었고 바지 위에 끈으로 X자 모양이 되게 묶어 입기도 하였다. 브라코처럼 보이나 다리에 밀착되는 양말인 호즈는 다리와 발을 감싸는 양말의 원조로서 바이어스 재단한 모직이나 가죽으로 만들었다. 귀족들의 호즈는 선명한 색채의 견직물이나 모직물로 된 것이 있었다.

 

헤어스타일과 모자

여자 왕관(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남자 왕관(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비잔틴 시대는 터번을 머리에 감거나 관을 머리에 쓰는 것이 유행하여 머리 모양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남자들은 로마인처럼 짧은 단발머리형이고, 여자들은 머리를 땋아서 내려뜨리거나 위로 올려 리본으로 묶는 초기의 형태에서 후기로 갈수록 터번이나 베일로 머리카락을 써서 장식을 하였다. 황후는 타이어 모양의 터번에 장식을 하고 그 위에 관을 쓴 모습을 볼 수 있다.

 

여자들은 베일을 썼는데 모양은 직사각형이고 크기는 매우 다양하여 어깨에 닿을 정도로 작은 것에서부터 몸을 다 덮을 수 있을 정도로 큰 것이 있었다. 베일 위에 밴드를 하거나 관을 쓰기도 했다. 옷감은 마, 모, 면, 견, 등이 모두 쓰였으며 흰색, 자색 등이 있었다.

 

평민 남자들은 캡 모양의 모자나 페타소스, 쿠쿨루스, 프리지안 캡을 썼다. 페타소스는 농부들이 작업할 때 태양 광선을 가리기 위해 쓴 챙 달린 모자이다. 쿠쿨루스는 케이프에 달린 후드인데, 비잔틴 시대에는 수도사가 주로 착용하였다.

 

신발

부츠(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신발(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비잔틴의 신발은 샌들, 부츠, 슈즈형이 있는데, 로마의 것보다 발을 좀 더 감싸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신체를 가리는 비잔틴 의복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샌들은 보석으로 연결시켜 묶어 매도록 되어 있는 것이 있다. 부츠느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들었고 발목, 종아리 중간, 무릎 아래 길이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황제나 집정관 등 지위가 높은 사람과 군인들이 부츠를 신었다. 6세기경에는 힐이 없고 연한 가죽이나 직물로 만든 슈즈를 신었는데, 발목에 가죽끈이 있는 슈즈는 호즈와 함께 왕족들이 신었다. 7~9세기경에는 하류 계층에서 호즈와 슈즈를 신었다.

 

남녀 신반 형태는 차이가 없었다. 신발의 앞부리가 뾰족하고 그 끝이 위로 향한 것이나 재료에 있어서 비단 사용과 자수 장식을 한 것 등은 동양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신발 재료는 부드러운 가죽, 비단을 사용하였고, 황제나 귀족들은 신발에 진주, 기타 보석 장식을 하였다. 신발의 색은 붉은색이 가장 많이 쓰였고 자색,검정, 파랑 등이며, 황제의 것은 자색 비단에 금실로 수놓고 보석을 붙인 것이 있었다.

 

4세기경부터 양말이 나왔는데, 초기의 것은 재료를 가죽이나 모직물로 만들었으므로 신발과 형태가 비슷하여 신발과 구별하기가 어렵다. 페듈이라는 무릎 밑에서 접히는 양말이 있었다.

 

액세서리와 문양

브로치(출처-네이버패션전문자료)

비잔틴은 금은 세공 기술과 유리 세공업이 발달하였고, 보석이 매우 풍부한 여건에서 그리스와 동양의 액세서리가 전래되어 함께 사용되었으므로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였다.

 

액세서리로는 왕관, 머리 장식품, 목걸이, 귀고리, 팔찌, 반지, 피불라, 벨트 등이 화려한 의복에 맞추어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다.

 

비잔틴에서는 피불라보다 브로치를 애용하였다. 왕관은 금으로 만든 밴드에 보석과 진주, 에메랄드로 꾸며져 있어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콘스탄티누스 4세의 왕관이 그 찬란함을 보여준다.

 

반지는 귀족, 성직자들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부피가 크고 사용자의 문장, 이니셜, 십자형 등을 새겼다. 교황의 이니셜을 새긴 반지는 공식 서류의 봉합 부분이나 서명에 쓰였고, 교황이 죽으면 반지를 부수어 버려 교황 칙서의 위조를 방지하였다고 한다. 야자들의 약혼, 결혼반지에는 이름을 새겼고 금,은,청동으로 만든 것이 있었다.

 

목걸이는 그리스와 로마의 것을 혼합한 것과 같은 형태와 이집트의 폭이 넓은 목걸이와 유사한 것이 있었다.

 

벨트는 가죽에 진주나 보석 장식을 한 것이나 체인을 연결한 것 등이 있었다.

 

비잔틴의 직물은 전체가 무늬로 채워져 있는 것이 많으며, 무늬의 내용과 형태에 특징이 있다. 비잔틴은 기독교가 국교로 된 이후 5~6세기경부터 직물에 종교적인 주제가 많이 나타난다. 6세기 이후는 페르시아 문양의 영향으로 보이는 주제가 표현되어 있고, 7~9세기는 성서에 나오는 인물을 주제로 한 것이 나타나며, 12세기의 것에는 둥근 원 안에 생명의 나무, 사람, 사자의 모양이 직물에 자수되어 있다.

 

종교적인 주제로 동물 문양이 쓰였는데, 이들은 상징적인 의마가 있는 것이었다. 즉, 양은 그리스도를, 비둘기나 몰고기는 성령을, 독수리는 힘을, 뱀은 타락을 뜻하였다. 그 밖에 날개 달린 말, 사자, 코끼리, 사슴, 토끼, 공작, 오리, 수탉 등의 동물 문양들이 있었다.

 

또 순결을 뜻하는 백합꽃이나 종려 아칸서스의 잎사귀가 도안화되어서 둥근 원의 공간으 스크롤형을 이루며 메꾸어져 있는 것들이 있다. 기하학적인 문양은 원, 직사각형, 십자가, 점무늬, 별무늬 등이 수직이나 수평 방향으로 연속무늬를 이루고 있는데, 직사각형은 예루살렘을, 원은 영원한 안녕을 상징한다고 한다.

 

직물과 문양, 액세서리에 쓰인 색채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는데, 레스터에 의하면 희색은 순결을, 파랑은 천국에 대한 믿음과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하는 신성함을, 빨강은 신의 사랑을, 자색은 위엄을, 녹색은 영원한 젋음을, 황금색은 덕이나 선행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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