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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서양 복식사

17세기 복식3(바로크 시대)

17세기경 남자 복식(출처-https://www.siue.edu/COSTUMES)
17세기경 남자 복식(출처-패션전문자료사전)
17세기경 남자 복식(출처-https://www.siue.edu/COSTUMES)

남자 복식

17세기 복식의 기본적인 스타일은 16세기를 지배했던 스페인 스타일이 계속 유행하였으나, 중기 이후부터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유럽의 유행을 주도하면서 부분적으로 변화가 일어났으며 새로운 의상 품목이 생겨났다.

특히 남자 복식은 더블릿과 바지의 형태에 큰 변화가 있었고, 조끼, 코트, 크라바트 등 새로운 것이 생겨나 정착되면서 현대 남성복의 기본이 마련되었다.

프랑스 왕실을 중심으로 한 영국의 왕실, 기사 계급, 네덜란드의 시민 계급의 남자 복식은 다음과 같다.

 

더블릿

17세기 초 10년간은 형태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1620년대에 더블릿의 옷 길이가 짧아지면서 허리선이 위로 올라가고 앞 중심이 뾰족한 예각이 되었다. 허리선에 연결된 여러 조각으로 된 스커트 부분은 반대로 길어졌다. 더블릿의 몸판은 앞가슴 양쪽으로 대칭되게 세로로 길게 째어서 흰색 셔츠가 보이게 된 것이 있었다. 허리에는 좁은 벨트를 하기도 하였으나, 영국의 경우 1628년 이후 벨트 대신 수대를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띠고 여기에 칼을 차게 되었다.

1640년대에 더블릿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허리선과 스커트 부분이 없어지고 옆선이 거의 직선으로 되어 헐렁하고 활동하기 편한 스타일이 되었다. 옷 길이가 더욱 짧아지면서 바지와 더 이상 연결해서 입지 않게 되었고, 더블릿의 단추를 위만 끼어서 아래는 셔츠가 내보이게 입었다. 목 밑에서 단까지 둥글고 작은 단추가 촘촘히 달려 있는 것이나 단춧구멍의 배열은 장식적인 효과를 나타내 준다.

초기의 더블릿의 소매는 윙(wing)이 달려 있고, 꼭 끼는 것과 팔꿈치까지는 부풀리고 손목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것, 슬래시가 있거나 길이로 째어진(paned) 것 등이 있었다.

1640년대에 허리선이 없어지면서 소매통이 직선으로 넓어지고 넓적한 커프스를 달았다. 이 소매 끝의 위로 접힌 커프스는 복식사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디자인이다. 또한 더블릿의 도련, 앞 중심, 소맷부리에 브레이드로 선 장식을 한 것도 주목할 사항이다.

17세기 초 더블릿의 목둘레는 둥근 목둘레에 스탠딩 칼라가 달린 것을 볼 수 있다. 1620년대부터는 러프 외에 어깨를 덮는 폴링 밴드와 휘스크(whisk) 등이 공존하였고, 세기의 진행과 함께 여러 가지 새로운 칼라가 생겨났다.

1650년 이후 더블릿은 옷 길이와 소매가 아주 짧아져서 허리와 소맷부리에 셔츠가 밖으로 보이게 되었다. 더블릿은 볼레로 형태로 점점 작아지다가 1670년대에는 새로 나타난 코트로 대체되었다.

 

셔츠와 넥웨어

더블릿을 몸에 꼭 끼게 입은 17세기 초에는 셔츠가 밖으로 보이지 않아 중요한 품목이 아니었으나, 후기에 가서 더블릿이 볼레로 형태로 짧아지면서 셔츠의 품이 넓어지고 길이가 긴 비숍 슬리브(bishop sleeve)가 달리게 되었다.

소맷부리의 레이스와 러플이 손등까지 늘어지는 것이 있었고, 랭그라브가 유행하던 때에는 소매를 리본으로 묶고 리본 다발로 장식한 것이 있었다.

셔츠의 목둘레는 목에 잘 맞는 라운드 네크라인이고 여기에 여러 종류의 칼라를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게 만들었다.

16세기에 처음 고안되어 다양한 형태로 복식 미를 창출하던 러프가 17세기에는 풀리가 빠지고 자연스럽게 어깨에 내려앉으면서 잇달아 여러 가지 모양의 칼라를 만들어 냄으로써 서양 복식에서 칼라 발달의 시발점이 되었다.

아주 거대한 러프는 1610년대 이후에는 유행하지 않았고 보통 크기의 러프는 1620년대까지 많이 이용되었다. 공식복에서는 러프가 좀 더 오래 남아 있었으며, 러프에 풀을 먹이는 것에 대해서는 청교도들이 심하게 비난했다는 기록이 있다.

1615년 이후 풀 먹이지 않아 시들은 꽃잎처럼 어깨에 내려앉은 러프가 나왔다. 러프의 대체물로서 1630년대까지는 스페인의 골리라(golilla)가 유행하였다. 이 칼라와 비슷한 휘스크 칼라(whisk collar)는 대게 반원형으로 철사 받침을 하여 머리 뒤쪽은 뻗치게 하여 부채 모양이었고, 앞쪽은 칼라의 좌우 양끝이 턱밑에서 수평으로 만나게 되어 있다.

1640년대 이후는 앞에서 ∧형으로 만나는 좁은 스탠드칼라에 술이 달린 끈으로 턱밑에서 매어 주는 것, 어깨를 케이프처럼 온통 덮는 칼라, 앞가슴과 뒤는 어깨뼈를 덮는 네모난 칼라 등이 있었다. 네모난 칼라는 레이스를 덜 사용하였으나 대부분의 칼라는 리넨이나 얇은 면직물로 만들고 가장자리는 레이스로 장식하였다.

후기에 가발의 부피가 커지고 길어지면서 칼라의 모양이 변하였는데, 머리카락으로 칼라가 가려지므로 직사각형 형태로 길게 앞으로 늘어진 형태의 칼라가 나왔다. 이런 칼라를 베네치안 그로푸앵 칼라(Venetian gros point collar)라고 한다.

1660년대에 목을 장식하기 위해 레이스나 천으로 앞 목에서 리본처럼 매는 크라바트가 나왔다. 크라바트의 유래에 관해서는 가발이 거대해지면서 러프나 그 밖의 칼라 대신으로 조끼와 코트의 목장식으로 대체되었다는 설과 크로아티아의 군인들의 목두르개에서 유래되어 프랑스 군인들이 매었고, 영국에는 찰스 2세의 통치 기간 동안에 의복에 수용되었다는 설이 있다.

크라비트의 재료는 흰색 리넨, 비단, 얇은 면직물로 폭이 약 30센티미터, 길이가 100센티미터 정도의 것을 목에 두 번 감고 앞에서 한 번 매어 늘어뜨린 것이 있었다. 1670년대에 코트가 생기면서 더욱 유행하였고 후기로 갈수록 장식적으로 되어 수평이 되게 리본으로 루프를 만들어 같이 매기도 하고 가슴에 부챗살처럼 늘어뜨린 형태가 있었다. 이 크라바트는 현대 남자 넥타이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다.

1690년대에는 크라바트의 다은 모양으로 슈타인커크(steinkirk)가 유행하였다. 이것은 프랑스가 1692년 슈타인커크 전투에서 승리하고 나서 널리 퍼진 이름으로 얇은 면직물로 된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한 번 매어 꼬은 후 그 끝을 코트의 단춧구멍에 끼어 늘어뜨리는 것으로 여자도 이 유행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