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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서양 복식사

17세기 복식6(바로크 시대)

17세기 중기 여성 복식(출처-https://www.siue.edu/COSTUMES)

중기의 가운

1630년대에 보디스는 허리선이 본 위치로 올라가고 딱딱한 바스크(basque)가 없어지면서 몸에 자연스럽게 맞는 형태로 변하였다.

목둘레는 네모형이나 U자형, V자형으로 많이 파이고 어깨와 등을 노출시켰으므로 여러가지 칼라와 넥웨어(neckwear)가 생겨났다.

넓게 파인 목둘레에는 버서 칼라나 케이프칼라가 달렸으며, 버서 칼라는 넓은 레이스 장식이 칼라 둘레에 붙어 있는 것이 있다. 케이프칼라는 천으로만 되어 있거나 가장자리에 레이스를 단 것이 있으며 한 겹 내지 세 겹으로 된 것이 있었다.

넥웨어는 큰 정사각형의 천을 대각선으로 접어 숄처럼 어깨에 둘렀다.

1620년대 이후 허리선이 본래의 위치로 올라가는 자연스러운 형태가 되어 1630년대와 1640년대에 부드러운 실루엣을 형성하였으나, 1650년대부터 다시 허리선이 아래로 내려가고 앞 중심에서 예각을 이루었다. 뾰족한 앞 중심에는 금속, 상아, 나무로 된 심대(busk)를 넣었다 빼었다 할 수 있게 하였다. 스터머커에는 정교하게 수를 놓은 것이나 리본으로 완전히 덮이게 한 것, 담비 털로 만든 것 등이 있었다.

스페인은 1650년대에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냈는데, 가슴은 납작하고 편평하게 코르셋으로 바짝 죄고 스커트는 좌우로 확대된 스타일이 나왔다.

소매의 형태는 심을 넣어 볼륨을 살리고 팔꿈치에서 리본으로 매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 것이나 세 개의 퍼프가 생기게 한 것이 있었다.

1640~1650년대에 유행되었던 소매는 팔꿈치 길이의 짧은 소매로, 커프스가 없고 손목까지는 슈미즈의 프릴 달린 소매가 보이는 것이었다. 소매통이 넓은 풀 슬리브(full sleeve)는 팔꿈치 바로 아래 길이에 넓은 레이스 커프스로 끝마무리가 되어 있는데, 이는 중세 이후 드러나지 않았던 여자의 팔을 처음으로 노출시킨 예이다.

스커트의 실루엣은 1630년대부터 후프가 빠져나간 자연스러운 형태였으나 1650년대 이후 다시 파딩게일 스커트를 확대시켰다. 1665년 이후 파딩게일은 여러 벌의 페티코트로 대체되고 궁정과 특별한 행사 때에만 파딩게일을 착용하였다.

스커트는 앞 중심이 터진 것과 막힌 것이 있고, 풍성하게 품을 넓히기 위해 허리선에 주름을 잡아 주었다. 스커트의 앞자락보다 뒤가 약간 길게 바닥에 끌리는 형태로 옷 길이가 길어졌다.

17세기 말 여성 복식(출처-https://www.siue.edu/COSTUMES)

후기의 가운

보디스는 코르셋으로 조여 몸에 꼭 맞고 허리선이 중심에서 예각이 되었다.

보디스는 대게 뒤 중심에서 여미고 드물게 앞에서 여미는 것이 있었다. 앞뒤의 어깨 솔기를 꿰매지 않고 끈으로 연결하여 매어 주기도 하였다. 앞에서 여미는 것은 일정한 간격으로 보석 브로치로 걸어 잠그거나 리본으로 매듭지게 여며서 슬래시를 형성하였으므로 슈미즈가 그 틈새로 보였다. 스터머커에 수를 놓거나 리본 장식을 하여 앞 중심에 붙이기도 하였다.

후기에 프랑스에서 코르셋을 겸한 보디스가 고안되었는데, 고래수염을 넣은 보디스란 뜻으로 코르 발레네(corps balein'e)라고 하며, 앞 중심이 예각으로 돌출되어 있고 탭이 달려 있어서 보디스 안쪽에서 스커트를 고리로 걸어서 입었다.

목둘레는 어깨를 내놓을 정도로 많이 파여서 가장자리로 슈미즈의 프릴이 보이는 것이 있고 휘스크나 넓은 버서 칼라를 달았다.

1690년대 이후에는 남자들의 것과 유사한 슈타인커크나 크라바트를 말을 탈 때 목에 감아 장식하였다.

소매는 긴 것과 팔꿈치보다 짧은 소매가 생기고, 팔꿈치에 여러 층의 레이스를 다는 앙가장트(engageantes)가 나왔다. 소매의 배래는 직선으로 되고, 소맷부리에 넓적한 레이스 장식이 붙거나 슈미즈 소매를 길게 하여 밖으로 많이 보이게 하였다.

1680년대에 스커트는 매우 긴 트렌인을 늘어뜨리는 것이 유행하였다. 스커트 겉자락을 뒤 중심에 드레이프 시켜 버슬 스타일이 되도록 끌어올려서 페티코트가 더욱 많이 보이게 되었다. 따라서 페티코트의 도련에 한 줄의 폭이 넓은 플라운스(flounce)가 있거나 3~4층의 플라운스를 수평 방향으로 달거나 프린지(fringe), 태슬(tassel), 브레이드(braid) 등으로 장식하여 복식 미를 나타냈다.

이외에도 페티코트에 줄무늬가 있는 것이 유행하였으며, 수를 놓거나 누빈 것이 있었고, 스커트의 옆선에 세로로 째어진 포켓이 생겨났다.

외투

보디스와 스커트 또는 재킷과 스커트 위에 오버 드레스를 입었는데 이 옷을 가운이라고도 한다.

이 오버 드레스는 스페인 스타일에서 유래된 것으로 외투라기보다는 보디스와 스커트에 조화시켜 입은 의복이라고 할 수 있다. 1640년대까지 유행한 이 겉옷은 어깨는 잘 맞고 바닥 길이로 앞 중심이 위에서 단까지 터져 있어서 여미지 않고 입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매가 없이 윙만 달린 것, 긴 행잉 슬리브가 달린 것, 짧은 소매가 달린 것 등이 있으며, 주로 하이넥의 보디스나 재킷과 조화시켜 입었다.

케이프 형태의 맨틸라(mantilla)는 옷 길이가 짧고 원형으로 재단되어 있으며, 후드가 달린 것도 있었다.

속옷

여자들은 속에 슈미즈를 입고 그 위에 코르셋과 후프를 입었다. 다시 페티코트를 한 벌 이상 겹쳐 입고 가운을 입었는데, 맨 위에 입은 페티코트는 가운의 앞이 A형으로 갈라진 것이면 겉옷과 같은 기능을 갖는 것이었다. 슈미즈는 고대로부터 계속 언더 튜닉으로 입어 온 의복이다. 슈미즈는 전체적으로 품이 넉넉한 원피스 형태이고, 주로 흰색의 리넨으로 만들었으며 향수를 뿌려서 입었다고 한다.

슈미즈의 목둘레는 보디스의 목둘레에 따라서 낮게 파인 것이나 하이 넥의 것이 있었다. 1650년대 보디스의 목둘레가 어깨를 내놓을 정도로 파였을 때는 슈미즈도 따라서 많이 파였다.

목둘레, 소맷부리, 앞 트임, 아래 도련에 수를 놓은 것이나 프릴, 레이스 등을 달았다. 소매는 손목까지 꼬 끼는 긴소매나 팔꿈치 바로 아래 길이의 퍼프 소매가 있었다. 후기에 보디스의 소매가 짧아지고 슈미즈가 팔에 보이게 되면서 슈미즈의 소맷부리가 매우 장식적이 되었다.

소맷부리에 위로 접힌 커프스가 붙은 것, 레이스나 천으로 프릴을 단 것, 리본으로 매어서 오므리는 것 등이 있었다.

17세기 영국의 민요에 반 셔츠(half shirt)와 속바지를 입은 처녀라는 구절이 있는데, 반 셔츠를 현대 블라우스의 시작으로 간주하여 슈미즈의 옷 길이가 짧아진 것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속바지(drawers)는 처음 이탈리아의 도시 처녀, 점잖은 부인들이 가운 속에 리넨이나 실크로 만든 바지를 입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16세기 중기 이후 프랑스 여자들이 입었던 속바지는 상류 사회의 전유물로 말을 탈 때나 특별한 경우에만 입었다고 한다.

코르셋은 앞 중심이 예각으로 된 것과 약간 둥글게 생긴 것이 있으며, 대게 중심에 바스크가 있어서 딱딱하게 만들었다. 도련에는 탭이 달려 있어서 허리선에서 스커트와 자연스럽게 조화될 수 있게 되어 있다.

페티코트는 가운의 겉자락이 벌어져 있거나 뒤쪽으로 드레이프 시킬 때 많이 보이기 때문에 밝고 화려한 색으로 만들었다. 영국의 경우 빨간색이 인기가 있었다. 1625년 이후 파딩게일을 받쳐 입지 않게 되면서 스커트가 바닥에 끌리고 주체하기 힘들 정도였으므로 속에 페티코트를 여러 벌 겹쳐 입게 되었다. 17세기 말에는 풀을 빳빳하게 먹인 마직으로 언더 페티코트를 만들어 입어서 여러 벌 껴입지 않아도 뻗치는 실루엣을 나타낼 수 있었다.